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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 김욱 본문

지혜의 숲 (書齋)

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 김욱

freesoul24 2025. 1. 2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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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꿈꾸던 소년은 어느새 아흔의 노인이 되었다. 그사이 남들처럼 직장에서 일도 해봤고, 집도 가져봤고, 전 재산을 잃어도 봤다.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어 자식도 낳지 않으려 했는데 어디 세상일이 뜻대로 되는가. 나이 쉰에 아들도 얻었다. 담담하게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추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과연 그가 백 살에 가까운 ‘노인’이 맞는가 싶다. 그의 고민과 생각이 요즘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톨스토이, 쇼펜하우어, 디자이 오사무의 글들은 작금에도 많이 읽히는 책이다. 아흔 노인의 글이 지금에도 낡지 않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일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시기를 나누고 각각의 시기마다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백세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긴 시간 이어져온 많은 관습과 관념들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저자는 아들, 남편, 직장인, 아버지가 아니라 ‘나’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노년의 모습을 제시했다. 또, 저자는 ‘죽음’마저도 달라지지 않으리라 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톨스톨이의 죽음에서 해답을 찾았지만, 그것이 모두의 해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저절로 삶과 자신을 사랑하는 자세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아흔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잘 살았다’는 평가는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1. 나이가 들어서도 인생은 두려움의 연속이다

삶을 지배하는 공포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성공이라는 두 글자에 담긴 그림자 따위,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겉보기에 화려한 사람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말해도 되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나는 그 당당한 자신감 이면에 감춰져 있는 공포를 바라본다. 나 또한 그 공포를 감추며 살아왔고, 그것이 드러났을 때 맹수로 돌변하여 얼마 남지도 않은 이빨을 드러내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 생각이 자주 난다. 그가 신문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그의 사수 기자로 임명 받았다. 지나치게 발고 들뜬 모습이 가식처럼 느껴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를 싫어 했을까. 인간이 인간을 미워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게 없는 표정을 그가 지을 줄 알기 때문에, 내가 하지 못하는 말을 그는 스스럼없이 입에 담았기 때문이다.

2. 나는 쇼펜하우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쇼펜하우어의 글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제대로 살아남고 싶다는 한 인간의 갈망이 내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뻔하디뻔한 통속적 시선들에 부딪혀 몸부림치는 쇼펜하우어의 고뇌가 새삼 절절하게 느껴져서, 삶의 비극을 저주하는 그의 입술이야말로 가증 섞이지 않은 진실한 생명에의 경의라고 멋대로 판단하게 되었다.

실패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부주의와 오판에서 비롯되는 실패다. 나머지 하나는 시행착오에서 비롯되는 실패다. 이왕지사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후자를 권한다. 부주의와 오판에서 비롯되는 실패는 나중이 없다. 하지만 시행착오로 겪게 된 실패에는 '다음'이라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준비 기간이 주어진다.

실패는 속성을 이해하는것이 중요하다. 어파피 실패했으니 포기하고 다른 시도로 눈을 돌리기 보다는 실패한 경험을 분석하여 나만의 지식으로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조적 실패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내가 당한 실패를 찬찬히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에 대한 해답은 실패 안에서 저절로 발견된다.

3. 타인을 용서하는 것, 다름을 포용해주는 것

타인을 용서하는 것, 타인의 다름을 포용해주는 것은 내가 누구이든, 어떤 사람이든 증명이 가능하다. 내가 용서해줄수 있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냈을때, 사람들은 그런 나를 다른 눈으로 바라봐준다. 어쩌면 그런 시선들이 모여 마음 한구석의 공간을 채워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눈들이 나를 지켜봐주고 의지하고 기대고 있다는 의식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의미 있는 존재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인생은 혼자 살수 없다. 혼자라면 삶은 의미가 없다. 독단은 언젠가는 삶을 망치는 독이 되기 마련이다.

4. 수십 년을 투덕거리며 살아온 부부의 지혜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인지 그렇게 싸우다 보니 조용히 웃으며 넘어가는 날에는 불안해서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집기가 날아다닐 정도로 거하게 한판 붙은 다음 날이면 뻐끈했던 어깨도 긴장이 풀려 아침에 나란히 소파에 앉아 모닝커피를 즐기며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젊은 시절의 뜨거운 애정이 줄어든 만큼 가정이라는 전쟁터에서 함께 쌓아 올린 끈끈한 전우애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수십년을 그리 부대끼며 치열하게 부부관계를 유지해도 끝내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천성이 드러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배운 전공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다.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한집에서 두 눈뜨고 목격하며 인정해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가 된 다는 것은 내 삶의 반을 아내, 혹은 남편에게 빼앗긴다는 뜻이다. 부부는 '1+1=2'가 되는 공식이 아니라 '1+1=1'이되는 공식이다. 내가 가진 0.5를 상대에게 내어주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관계다.

5. 망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으면 나는 아주 기고만장한 얼굴이 된다

쓰러짐은 대수롭지 않다. 쓰러진 후에 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쓰러지는 것이 무섭지 않다는 용기가 중요하다. 넘어졌다 일어나 보면 쓰러지지 않는 한 가지 방법을 알게 된다.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설 용기만 있다면, 두 번이든 세번이든 넘어진 줄 았았는데 여전히 서 있는 자신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관대해진다. 산다는 것은 결국 반복되는 시간의 연속이다. 특별히 얻은 것도 없고, 크게 잃은 것도 없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힘들게 살았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기나긴 꿈을, 거창하고 허황되지만 내 뜻과는 상관없었던 악몽과 흉몽의 중간쯤 되는 비몽사몽간에 나는 어느덧 팔십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다.

내가 경험한 진실은 성공하면 좋고 실패하면 안 좋지만, 성공해도 안 좋을 수 있는 확률이 반, 실패해도 좋을 수 있는 확률이 반이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미련 갖지 말기를 바란다. 잘 풀렸다고 까불지 말고, 더럽게 안 풀린다고 세상을 원망해서도 안 된다. 지나고 보면 다 쓸데없는 마음이다. 지나고 보면 인생이란 무조건 좋다. 죽지 못해 살았던 그 시절마저 지나고 보면 그립다. 그 오욕의 한철을 견뎌낸 내 자신이 너무나도 예쁘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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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 - 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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